노태우 대통령과 골프골프를 사랑한 그린위의 보통사람 노태우 대통령을 그리며
노태우 전 대통령과 영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골프 라운드를 함께한 것이 벌써 26년 전 일이다. 1995년 대통령직을 물러나 2년 후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 특별강사 초청으로 8월 8일부터 19일까지 하와이를 방문하였다. 강연을 마친 후 노 대통령은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면서 골프를 즐기던 중 당시 대한항공 지점장이었던 필자를 골프에 초대하였다. 당시 필자는 JAL이 주최하는 하와이 아마추어 챔피언 대회에서 우승해 골퍼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노 대통령과 김옥숙 여사, 필자 그리고 골프장 프로와 마우이 카팔루아 골프 클럽(Kapalua Golf Club)에서 18홀 라운드를 시작하였다. 그린위에서 만난 전직 대통령은 권위의식은 찾아볼 수 없고 평범한 영국 신사처럼 골프에 매진하는 모습이 대단히 진지했다. 핸디캡 18 정도에 드라이버 거리는 180m 정도이고 페어웨이에서는 아이언보다 우드를 즐겨 사용하였다.
육군사관학교 및 오랜 군 생활로 원리 원칙이 몸에 밴 노 대통령은 골프 플레이도 골프 규정대로 라운드를 진행했다. 골프 순서 어너(honour)도 스코어 순으로 치자고 하면서 극구 먼저 티샷 권유를 뿌리쳤다. 한번 볼이 깊은 벙커에 빠져 페어웨이로 볼을 던지려고 하자, 만류하며 그대로 벙커샷을 했다. 샷을 끝난 후 모래 발자국도 본인이 고무래로 정리했을 정도였다. 퍼팅 에서도 홀에 좀 떨어진 거리의 것을 속칭 오케를 주자 언짢은 표정을 하면서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며 끝까지 홀아웃을 고집했다.
스코어도 본인이 직접 적는데 R1은 대통령이고 R2는 김옥숙 여사를 약자로 써놓고 한 홀 한홀 스코어를 기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스코어 카드는 집으로 가져가 오늘의 샷을 반성하고, 평가한다고 한다. 상대방이 똑바로 장타를 치면 굿샷과 퍼팅이 굴러 들어가면 ‘나이스 인! ’하면서 콜을 해주어 우리를 한결 부드럽게 해주었다. 먼저 퍼팅이 끝나면 깃발을 잡아 주고, 퍼팅 라인의 볼도 옆으로 퍼터 길이 만큼 옮겨주었다. 그는 티잉에리어의 부러진 티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전직 대통령이라는 무거운 선입견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함께 라운드한 김옥숙 여사는 정말로 휼륭한 영부인이다. 스코어는 겨우 100타를 끊은 수준이나 골프 라운드 중 늘 웃으면서 재미나고 유머스런 이야기를 해주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었다. 호주머니 속에서 피로회복제 사탕도 줘서 동네 누나 같은 기분이었다. 사진도 같이 찍고 전화번호를 물어보며 서울 오면 집에 꼭 오라는 인사도 건넸다.
첫 홀에서는 긴장되고 흥분한 나머지 분위기가 딱딱하였으나 18홀 라운드가 끝날 무렵에는 아주 친숙한 우정어린 친구들과 같이 서로가 자연스러웠다. 라운드가 끝난 후 간단한 맥주를 겸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애환과 고충을 한참 말하고 난 후 훌라 춤을 감상하는 모습을 보니 대통령의 무거운 직책을 벗은 그분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2일간 노 대통령 부부와 함께 골프를 하고, 마우이 섬 관광 투어를 마친 후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는 시종일관 보통사람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호놀룰루 공항에서 대한항공 서울행 비행기 좌석까지 모시고 인사를 한 것이 노 대통령과 마지막이 되었다. 골프를 사랑했던 보통사람 노태우 대통령은 이 세상을 하직하였지만 그 분이 남긴 휼륭한 공과와 인간미는 여러 사람들 가슴에 깊이 간직될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천국에서 그 좋아하시는 골프를 마음껏 치시기를 기원한다.
글 · 사진 김맹녕 골프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탑골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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