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인 T. S. 엘리엇(Eliot)의 유명한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나오는 시의 문구처럼 4월은 잔인한 달이다. 그러나 마른 대지 위에는 최근에 내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들어 파릇파릇 새싹이 올라오고 겨우내 모진 바람과 추위에 시달렸던 나무에는 새순이 돋아나 생명의 강인함을 보여 준다. 새들도 이 가지 저 가지로 날아다니며 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짝짓기에 여념이 없다. 양지바른 언덕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까투리의 목 색깔은 더욱 찬란해지고 쟁기를 향해 ‘깽깽’하며 외쳐대는 연민의 소리는 봄의 정취를 더욱 절절히 느끼게 한다.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는 전령은 산수유로서 엷은 노란색 꽃이 잔잔하게 봄소식을 전해준다. 이어서 흰 모란이 봄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양지바른 담장 위에 수줍게 꽃봉오리를 열고 미풍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면사포를 쓴 신부같이 순결하다.
한국의 봄은 역시 진달래가 주인공이다. 산비탈과 계곡 벼랑에 피어 있는 진달래 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새색시의 홍 붉은 치마폭을 보는 듯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어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봄이 되면 필자는 한참 동안 골프장 티잉 에리어(teeing area)에 서서 눈앞에 펼쳐져 있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와 숲속을 바라본다. 아직도 겨울 풍경 그대로인 누런색 캔버스에는 흰 벚꽃과 연분홍 살구꽃과 샛노란 개나리와 함께 어우러져 피어 있다. 먼발치 높은 언덕 위에 피어 있는 오동나무의 자색 꽃은 꽃가마를 타고 오는 신랑같이 도도하다. 마을 아래 가르마 같은 밭고랑을 만드는 할아버지의 힘든 괭이질하는 모습과 나물을 캐는 할머니의 모습은 오늘의 농촌 현실을 말해주어 왠지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다. 골프장의 홀과 홀 사이를 거닐다 보면 막 순이 솟아난 잡목과 소나무 숲이 교차되고 그 속에서 다람쥐가 봄의 정기를 받아 부지런히 오가며 바삐 뛰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뿐이랴, 울긋불긋 찬란하고 화려한 색깔로 치장한 여성 골퍼들의 어여쁜 의상은 녹색 그린과 어울려 남성들을 넋을 잃고 혼미하게 만든다.
골프장 그늘집에서 맛보는 달래와 냉이가 들어간 봄나물 비빔밥은 향긋한 냄새가 봄 풍경과 어우러져 색다른 풍미를 느끼게 한다. 시와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봄날 골프코스에 서니 나의 삶은 풍족해진다. 골퍼들은 스코어에만 연연하지 말고 때로는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봄이 오는 들판에 서서 자연의 숭고함의 섭리를 느껴야 한다.
잔디를 헤집고 올라오는 봄의 힘찬 박동 소리와 나뭇가지마다 초록빛 새싹의 향연과 언덕 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작은 시냇물의 속삭이며 흐르는 소리, 창공을 가르는 종달새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모진 겨울 추위를 이기고 세상에 선보인 이런 자연의 소리들은 우리 인간에게 희망과 행복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봄 향기로 가득 찬 들판을 산책하니 베토벤의 바이얼린 소나타 제3 악장의 약동하는 봄의 느낌을 온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페어웨이 잔디는 아직도 누렇지만 골프장 클럽하우스 담벼락 밑에 올망졸망 피어 있는 수선 화가 메마른 골퍼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준다.
자! 이제는 후반 나인홀을 봄의 풍경에 취해 라운드해 보려고 한다. 골프장 주변 자연은 꽃과 새싹으로 온통 산야가 녹색으로 치장을 하고 훈풍으로 아지랑이가 언덕바지에서 살랑살랑 춤을 추지만 막상 골프장 상황은 연중 최악의 상태이다. 봄철 골퍼들이 유념해야 할 사항을 제시해본다. 겨울철 내내 움츠렸던 몸은 굳어져 있는 상태이다. 라운드 전 충분한 준비운동과 워밍업은 필수이다.
대지가 태동하는 봄의 페어웨이는 겨울 잔디가 부서진 사이로 새 잔디가 올라오는 관계로 맨땅이나 마찬가지여서 아이언 샷이나 페어웨이우드 치기가 쉽지 않아 뒷땅에 토핑이 속출하는 제일 어려운 시즌이다.
아이언의 경우 페어웨이에 풀이 없는 경우가 많아 벙커에서처럼 스핀이 잘 걸려 그린에 짧은 현상이 발생하니 한 클럽 길게 잡을 것을 권한다. 그리고 페어웨이우드는 3번이나 4번 우드를 자제하고 5번 또는 7번 우드 아니면 하이브리드와 같이 로프트가 있는 클럽을 쓰는 것이 더 유용하다. 또한 봄바람이 시시때때로 방향을 바꾸어 불어 퍼팅 그린까지의 거리측정이 어렵고 퍼팅 그린에 새싹이 올라와서 거칠고 결이 강해서 공이 잘 구르지 않아 짧은 퍼터가 잘 들어가지를 않는 점을 고려해서 퍼트에 임하는 것이 좋은 스코어를 내는 비결이라 하겠다. 그린 주위에서는 모래나 흙이 그대로 노출되어 칩샷 대신 퍼터나 3번 우드로 굴리는 것이 현명하다. 필자는 봄의 훈풍으로 겨우내 쌓였던 마음의 먼지와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 내고 달래, 냉이 된장 백반으로 활력을 재충전했다. 하늘 높이 날아 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종달새와 운치를 자아내는 뻐꾸기의 울음소리, 그리고 딱따구리의 힘찬 나무 쪼는 소리가 만들어내는 봄의 교향곡으로 몸은 가벼워졌다. 산천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과 뿌리와 줄기의 물을 빨아올리는 힘찬 박동으로 나뭇잎 새를 피우는 나무들을 보고 영혼이 맑아짐을 느꼈다. 이렇듯 신이 축복한 봄의 하늘 아래서 자연을 벗 삼아 라운드하는 골퍼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골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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