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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문화유산은 전 세계가 누려야 하는 역사입니다”

‘문화’라는 아름다운 숲을 이루기까지 ‘제대로 한 길’ 인생

이유림 기자(topgolf2269@naver.com) | 기사입력 2023/08/09 [10:39]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문화유산은 전 세계가 누려야 하는 역사입니다”

‘문화’라는 아름다운 숲을 이루기까지 ‘제대로 한 길’ 인생

이유림 기자 | 입력 : 2023/08/09 [10:39]

 

인류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불가능들이 가능케 되는 기적들을 보았다.

그러나 인류가 그토록 바라 온 영원과 불멸에의 꿈만큼은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할 일이다.

그래서 인류는 인생 100년 너머의 가치를 좇아 오늘도 꿈을 꾼다.

그렇게 시공간을 넘어 지금도 ‘살아 있는’ 수많은 예술 작품과 위대한 신념들. 그도 이런 꿈을 꾸었던 걸까. 일평생 ‘문화’라는 고귀한 가치를 좇아 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1월 제4회 광화문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오지철 광화문문화포럼 회장은 수상자를 이렇게 소개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에 이바지한 공을 언급하려면 한 권의 책이나 하루 이틀의 얘기로는 부족하다. 1964년 형님과 함께 설립한 삼성출판사를 국내 굴지의 문화 발전소로 키우며 국민 지성을 살찌우는데 기여하였고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돌아다니며 시작한 희귀 고서 수집은 마침내 국내 최초의 출판 박물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박물관협회회장 재직 시에는 해외에 산재되어 있는 우리 문화유산 환수에 앞장섰는가 하면, 2009년에는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에 취임, 아예 문화유산 지킴이로 나섰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이 땅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을 향한 식을 줄 모르는 사랑과 끝없는 격려일 터이다.” 수상의 주인공은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었다. 

 

▲ 부산의 문화공감수정

 

▲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되고 있는 김종규 이사장의 활동 영역은 그 뿌리가 된 출판으로부터 시작해 회화, 차, 공예, 역사, 국악 등 문화계 전 영역을 망라할 만큼 광범위하다. 삼성출판사 시절에는 세계문학전집, 김동리 대표작선집, 한국여류문학전집 등 기념비적 명작들을 펴내는 데 일조했으며 특히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출간함으로 당시 토지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출판을 통해 모은 재산은 출판박물관을 설립함으로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설립 준비를 하던 차에 초대 문화부 장관에 취임한 이어령 선생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려면 2000년대까지 박물관 1000개는 돼야 하고 출판박물관은 필수’라고 재촉해 그해 부랴부랴 열게 되었습니다.” 박물관은 《월인석보》 22권과 23권을 비롯해 국보 《초조본대방광불화엄 경》 주본 13권 등 국보, 보물급 고서 11권을 포함해 출판 유물 40여만 점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고려 때 세계 최초로 발명한 금속활자는 우리나라의 발달한 인쇄문화를 잘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나라에서 출판박물관을 설립하게 된 것이 그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고서와 출판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삼성출판사에서 부산지사장을 맡은 1964년부터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수집을 하게 된 것인데 귀한 물건 살 때마다 부르는 값에 더 얹어주니 당시 고서 적상들이 그 앞에 줄을 섰다고 한다. 그 관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그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헌책방 순례다. 그 특별한 순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귀양살이하던 다산이 아내가 보내온 혼례 치마를 잘라 그 위에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교훈을 썼는데 그 책이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사라졌다가 60여년이 지난 어느 날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수레에서 발견되었어요. 그걸 누군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그냥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을 겁니다. 그 책이 지금 보물 1683호로 지정된 다산의 하피첩이예요. 모르면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그래서 안목이 중요합니다. 가치 있는 유물을 발견했을 때 그 보람이 너무 커요. 선인들이 해 놓은 것을 발굴할 때 천하를 얻는 것 이상의 기쁨이 생기고요.” 사라질 뻔한 많은 보물들이 그렇게 우리 곁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니 그의 헌책방 순례 또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인 보성여관

 

▲ 시인 이상의 통인동 집

 

한국판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문화유산국민신탁

본격적인 문화지킴이의 길로 들어선 것은 2007년 문화유산국민신탁 출범에 힘을 싣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국민이 믿고 맡긴다’는 뜻의 이름 그대로 국민 모두의 이름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내고 민간차원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문화유산 영구 보전, 관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미국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비롯해 전남 벌교 보성여관, 시인 이상의 통인동 집 등을 환수·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훼손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지키고 가꾸는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본보기로 삼아 설립했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120년 전에 영국에서 시작된 것인데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많은 문화유산이 훼손되었어요. 그때 시민들 스스로 소중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운동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2010년 취임 후 문화유산 국민신탁 회원수가 1만 5천여 명이 넘었고 여러 사업들을 진행하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일례로 문화유산국민신탁이 2012년 워싱턴 DC에 위치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을 100여 년 만에 매입해 되찾았을 때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셨죠. 그 외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헐릴 뻔한 동래정씨 문중의 종택과 농지, 이상의 집, 향토사학자 윤경렬 선생의 경주 옛집 매입 등 문화 유산의 보전, 위탁 관리 등에 힘써왔습니다. 계속해서 문화유산국민신탁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가고자 합니다.” 가치 있는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관리해온 김종규 이사장, 그는 시간의 역사뿐 아니라 공간의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해왔다. 

 

“역사를 기록하고 보전할 때 중요한 것은 기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창고처럼 보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숭례문과 경복궁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이상의 집도요. 우리의 역사를, 이상을 지금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인 보성여관과 일본식 가옥, 윤경렬 옛집 등도 우리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나라, 아름다운 인생

“국격은 경제 발전만으로는 안 됩니다. 어떤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고 어떻게 잘 보존해서 그 원형을 후손에게 이어줄 수 있느냐 바로 그것에서 한 나라의 품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누려야 하는 역사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공간의 역사를 지키는 것, 오랫동안 내려온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서 우리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는 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책임인 거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던 백범 김구. 그가 한없이 가지고 싶다고 했던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었다. 백범은 문화의 힘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준다고 했다. 2023년, 문화의 힘은 이미 국력이 되었고 세계인들이 놀라고 열광하는 K-컬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K-컬처의 DNA가 현재의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만든 힘이다.

“인생을 100년으로 본다면 30년 동안 공부하고, 30년 동안 현업에 몰두했으니 남은 인생은 사회를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했어요. 무보수지만 문화를 지키는 일이기에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어떻게 수많은 문화재를 모두 지킬 수 있겠습니까. 국가와 국민이 함께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야죠. 보전 가치가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국가와 더불어 국민이 잘 지켜 후손들에게 오롯이 물려줄 의무가 있어요. 그것이 문화유산국민신탁의 역할입니다.”

김종규 이사장은 삼성출판사 회장,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그리고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에 이르는 동안 참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 업적들로 국민훈장 모란장, 은관문화훈장, 문화부장관 표창 그리고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좌우명은 ‘시인신물념 수시신물망, 무도인지단 무설기지장(施人愼勿 念 受施愼勿忘, 無道人之短 無說己之長)’이다. ‘누구에게 베푼 것은 결코 생각하지 말며, 받은 것은 결코 잊지 마라. 다른 사람의 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말고 자기 자랑은 함부로 하지 마라’는 뜻이다. 중국 후한 시대의 학자인 최자옥이 남긴 말이다. 그 좌우명 속에 그가 살아온 인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가 곧 인격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 역할을 분수에 맞게 해내는 것이 인격이 높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시인 구상은 그에게 ‘제대로 한 길을 가라’는 말을 남겼다. 일평생 그 말을 지켜 온 것은 당연하다.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내면서. 문화라는 숲에 그가 남긴 거대한 발자취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 경주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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