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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인사동을 세계인의 문화 거리로 박복신 대회장 겸 인사아트프라자 회장

2023년 위대한 도전한국인 『우리고장 종로 33인』 시상식 성황리 거행

전봉진 대기자(toyzone@naver.com) | 기사입력 2023/12/01 [10:06]

종로 인사동을 세계인의 문화 거리로 박복신 대회장 겸 인사아트프라자 회장

2023년 위대한 도전한국인 『우리고장 종로 33인』 시상식 성황리 거행

전봉진 대기자 | 입력 : 2023/12/01 [10:06]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1 만세운동의 주역인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는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는 천도교 대표 자격으로 기독교계 이승훈, 불교계 한용운 등 인사들과 접촉했고 마침내 최남선이 기초한 기미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 33인』의 서명을 받았다. 3월 1일 운명의 날 오후 3시.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종로구 인사동 소재)』에 모여 당당히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하였다. 독립선언식은 비록 조촐하나 위대했다. 모든 행사가 끝난 4시 무렵 그들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다. 헌병과 순사들이 들이닥쳤고 최고 3년형의 옥고(獄苦)를 치른 끝에 손병희 등은 병사(病死)하고 말았다. 그들이 연행될 즈음 탑골공원 쪽도 시끄러워졌다. 민족대표를 기다리던 군중들이 사전에 배포된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별도의 선언식을 행하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친 것이다.

3.1 독립운동의 기세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방방곡곡으로 활활 타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대한민국 독립선언에 참여한 『순국선열 33인』의 정신을 일깨우는 차원에서,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종로구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주민의 복지 증진과 지역 발전에 공헌한 사람으로 어려운 역경을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성공한 사람들 33명을 선정하는 ‘2023 자랑스런 우리고장 종로 33인’ 시상식 대회장(大會長)을 맡은 박복신 인사아트프라자 회장(이하 박 회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는 뜻깊은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탑골프는 지난 11월 22일 오후 3시 104년 전 3월 1일의 종로 태화관처럼 뜨거운 분위기가 분출하고 있는 동묘역 앞 종로구민회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서울의 심장, 다시 뛰는 종로 : 종로는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

종로구는 조선의 건국 이후 한양 천도와 함께 오늘날까지 약 600여 년 동안 서울의 중심부로 국가 주요 공공기관이 있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추로서 세종로 네거리에는 우리나라 각 도시까지의 거리와 뉴욕·런던·베를린 등 세계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 표시가 된 『도로원표』라고 예쁜 한글로 쓰여진 돌표지판이 있어 종로가 우리 국토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종로라는 명칭은 지금의 종로1가에 도성문(都成門)의 개폐시각을 알려주는 큰 종을 매달았던 종루(鐘樓)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젊은 세대들은 생소하겠지만 기실 종로는 실제로도 『정치와 대한민국의 1번지』다. 1968년 1월 21일 남파 무장 공작원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했던 일명 ‘김신조 사건’이 터진 후 주민등록 번호 시스템이 급하게 만들어졌는데 지역 코드를 설정하며 청와대가 있던 서울 종로구 효자동을 0001, 즉 1번으로 설정하였다. 이후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장기영 경제부총리가 “저의 뼈는 금융인(한국은행 이사), 피는 언론인(한국일보와 서울경제 사장), 살은 체육인(IOC위원) 인데, 이제 『정치 1번지』에서 정치인으로 새 지평을 열고 싶습니다”라고 하여 이 말이 널리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런 만큼 종로는 항상 역동적이고 온 나라 사람들의 가슴 속 지주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외치거나 호소하거나 응원을 모아야 할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무조건 이곳으로 모인다. 3.1운동 때 그랬고, 신탁통치 반대와 4. 19혁명 때도 그랬고, 6월 항쟁 때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창조의 ‘붉은 함성’ 때도 그랬다. 종로는 분명 우리 한반도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삶을 압축하고 있다. 곧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이다. 그곳을 보면 우리의 미래가 보이는 곳이다. 그래서 종로는 항상 앞서 발전해야 하며, 힘차고 밝은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종로여! 앞으로도 영원히 이 나라 사람들이 비벼 댈 언덕이 되어 주고, 이 나라 밝은 역사의 좌표가 되어 주시게. 미래가 되어 주시게. 더 나아가 지구촌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한류 문화의 허브이자 메카로 거듭나기를....... 

 

 

2023년 위대한 도전한국인 『종로 33인』은 우리고장의 숨은 영웅들

이런 의미에서 지난 11월 22일 오후 3시부터 종로구민회관에서 거행된 2023년 위대한 도전한국인 ‘우리고장 종로 33인’ 시상식은 여러모로 종로의 작지만 위대한 영웅들의 진면목을 지근거리에서 목도(目睹)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축제였다. 박복신 인사아트프라자 회장이 대회장으로서 모든 행사를 총괄하고, 사단법인 도전한국인본부(김호일 총재, 조영관 상임대표)가 주최하고 김용호 서울특별시의회도전한국인자문위원장, 음재용 (사) 선진화운동중앙회 이사장, 박원용 도전한국인 33인선정 서울위원장이 공동주관 대표로 참여했다. 이날 『장광팔 만담가』의 걸쭉한 사회와 아나운서의 매끄러운 진행은 행사의 또다른 윤활유. 임종 직전 “내가 왜 죽는지 아느냐? 심심해서 죽는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국민해학가 장소팔』의 아들답게 장광팔 역시 부전자전(父傳子傳)이요 명불허전(名不虛傳). 좌중을 시종일관 웃음과 감동의 잔치마당으로 이끌었다.

시상식은 식전 축하 무대에 이어 도전한국인 페스티벌 하이라이트 영상 시청, 박복신 대회장 개회선언과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내외빈 소개, 박복신 대회장 환영사, 최재형 종로구 국회의원과 정문헌 종로구청장, 라도균 종로구의회 의장 및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종로당협위원장 축사, 테너 김기종 축하 무대, 종로 33 인과의 단체 기념촬영, 이병오 심사위원장 심사평에 이어 ‘우리고장 종로 33인’ 시상식이 이어진 후 한미나 전자 바이올린 축하 공연 및 농협에서 쌀 100포(1kg/포)를 종로노인회에 후원하는 전달식을 끝으로 성료(盛了)되었다.

우리고장 종로 33인 선정위원회 박복신 대회장은 “이번 시상식은 대한민국 독립선언에 참여한 민족지도자 33인을 기념해 종로의 지역 영웅을 발굴해 시상하는 자리입니다. 정치·행정·경제·사회·문화·스포츠·봉사활동 등 각 분야에서 종로를 빛낸 지역 영웅 33명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심사위원들의 엄정한 심사에 의해 선정했습니다. 종로를 빛낸 지역 영웅을 통해 종로구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는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자랑스런 종로 33인’을 발굴하려고 하였는데, 각 분야에서 불굴의 정신으로 지역 발전을 위해 힘쓰신 종로구민들에게 이번 시상이 골고루 선별된 것 같습니다. 33인의 지역 영웅들께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종로뿐 아니라 사회의 귀감이 되어 국가발전에 공헌하는 대한민국의 영웅, 나아가 세계의 영웅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국민의힘 최재형 종로구 국회의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해 오신 분들을 발굴하여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계신 도전한국인 본부 김호일 총재님(대한노인회장)과 조영관 상임대표님, 행사를 치밀하게 준비하신 박복신 대회장님과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 말씀 드립니다. 더욱 자랑스럽고 살고 싶은 종로를 만들도록 저도 열심히 노력하 겠습니다. 감사합니다.”고 축사를 하였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참석하는 열의를 보인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종로구민 모두가 협력해 세계의 본(本)이 되는 종로를 만들어나가는 데 함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며 마무리 인사를 하였다.

사단법인 『도전한국인본부』 조영관 상임대표는 “추운 겨울을 이겨낸 씨앗만이 아름다운 봄꽃을 피워낼 수 있습 니다. 오늘 우리고장 종로 33인 수상자는 이 시대의 작은 영웅이며, 맡은 분야 최고의 도전한국인입니다. 이제 오늘 수상자에게 『도전한국인』이라는 명예롭고 새로운 이름표를 달아드립니다. 앞으로 도전한국인본부는 전국 자치단체에서 각 33인의 자랑스런 인물을 발굴하고 시상하는 행사를 통해 한국인의 진취적 기상을 고취하기 위한 의욕적인 활동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비전을 밝혔다.

 

 

 

약무인사동, 시무박복신(若無仁寺洞, 是無朴福信) : 인사동은 내게 약속의 땅

박복신 『인사아트프라자』 회장은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지만 대학로 동숭동에서 자랐다. 학창시절 종로, 인사동, 세운상가 일대에서 보내서 이곳 지리를 훤히 꿰고 있다고 한다. “저는 26살에 결혼했는데 초등학교 동창인 아내를 만나 데이트를 한 곳도 이곳이에요. 제가 아들 하나, 딸이 하나 있는데 성악을 전공하는 딸이 예원중학교를 다녔고 성악 공연을 한 곳도 바로 지금의 인사아트프라자가 있는 이 자리입니다.”

박 회장이 이렇게 인사동과 인사아트프라자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젊었을 때부터 꾸었던 꿈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출시되던 당시 세운상가에서 컴퓨터를 판매했었다. 인사동을 자주 왕래하던 그는 지금의 인사아트프라자를 보면서 자신도 저런 건물을 가지고 각종 전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정말로 인사 아트프라자의 주인이 되었으니 개인적으로는 무척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사동이 없으면, 박복신도 없다(若無仁寺洞, 是無朴福信)’라고 말해도 허언이 아니라고 한다. “인사동은 바로 제 삶의 뿌리이자 약속의 땅입니다.” 인사동(仁寺洞)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 에서 인(仁)과 사(寺)를 따와 1915년부터 인사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종로2가에서 시작해 인사동 주거리를 지나 관훈동 북쪽의 안국동 사거리까지다. 그러나 전통과 문화의 인사동이 시장으로 변질되는 아픔도 있었다.

“저는 인사동에 전통과 문화의 향기가 다시 흐르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먼저 미술작가들을 지원하고 특히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전시회를 여는 일에 매진했어요. 그 일환으로 청년작가들이 무료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청년작가전을 매년 개최하는데 매번 500명 이상이 지원을 합니다. 미술평론가들이 지원자 중 30여 명을 선정해 1주일 동안 2개 층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엽니다. 여기에 7~10명의 작가를 선발해 인사아트프라자상과 평론 가상을 수여하고 1주일 더 작품을 전시합니다. 인사동을 살리기 위해서는 박복신 개인의 힘보다는 좀더 체계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협조와 협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2017년에 『인사문화연구원』을 결성하고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대학교수·문화예술전문가·기업가·인사동 상가 주인 등 40여 명이 참여해 인사동 발전에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또한 박 회장은 좀더 근본적으로 우리 전통과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교육의 필요성도 느끼게 됐다. 2019년 11월 29일에는 인성교육의 메카인 성균관 중부학당을 인사아트프라자에 개당해서 주목을 받았다.

 

인사아트프라자, 전통 한류 문화를 이끄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필수 코스 중 하나가 바로 인사동이다. 여타 관광지에 비하면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를 온전히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하루에 최소 4만 명이 찾았던 명소 중의 명소였다고. 그런데 이 인사동을 더욱 한국스럽고 고풍스럽게 만들어주는 공간이 있다. 바로 지상 지하 총 8층 건물 전체가 공연장과 갤러리로 꾸며진 『인사아트프라자』다. 각종 공연과 전시회가 늘상 열리고 있어 『인사동 콘텐츠의 발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의 주인은 바로 대한전통명장협회,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 박복신 총재다. 과거 해외에서 IT전문가로 활동했던 그는 2007년에 귀국 후 문화사업에 투신, 『인사동 지킴이』로 환골탈태하였다. 특히 각종 단체와 협회의 수장을 맡아 이끌어 오면서 탁월한 기획력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많은 문화예술인의 신망을 얻고 있다. 그의 변신이 무척 궁금했다.

“저는 말레이시아에서 13년 이상 살면서 메인 서버를 구축하는 사업을 했습니다. IT 전문가로 사업을 했지만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오래전부터 제안에 움트고 있었던 것 같아요. 또 그림을 취미로 하는 아내와 성악을 하는 딸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2008년에는 대한민국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태국, 말레이시아 등 40여 개국을 다니면서 문화 활동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또 외국 작가들을 한국에 초청하는 일도 했습니다. 당시 문화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인으로부터 인사아트프라자에 관한 정보를 듣게 됐습니다. 당시 완공해서 분양까지 끝난 상태였는데, 법무사를 통해 법적인 소유 및 임대차 관계를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공매로 토지를 매입하게 됐어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9년여의 긴 시간이 걸렸고 2018년 인사아트프라자 전체 건물을 온전히 박 회장의 권한 하에 두기까지 솔직히 마음고생도 많았고 투자 소요도 만만치 않아 후회도 했지만 원만히 해결되어 그 또한 복으로 생각한다는 박 회장.

“인사아트프라자는 지상 5층 지하 3층 구조의 건물인데 이제야 원래 제 구상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하 1층에는 한식당이 자리하고 있고 지하 2층에는 200석 규모의 제1관과 100석 규모의 제2관이 있어요. 제2관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소팔 만담가』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장소팔 극장』으로 이름을 짓고 자제인 장광팔씨를 모셨습니다. 이전에 식당과 여러 개의 상품매장이 있던 1층에서 4층은 모두 갤러리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5층은 갤러리 카페로 인사동에 나들이 오신 분들이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전시회 개막식을 진행하거나 작가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토록 했습니다. 사통팔달로 탁 트인 6층 루프탑에 오르면 일직선상에 청와대가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도록 꾸몄는데 봄, 여름, 가을에는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핫플레이스입니다.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참 많습니다. 1층에서 4층까지 모두 갤러리를 만든다고 하니까 많은 작가, 문화예술 인들이 반가워하면서 협조를 아끼지 않으셨어요. 직접 건물 디자인을 스케치 해주신 교수님도 계셨고요. 또 인사동 주변 상인들께서도 인사아트프라자의 의도에 공감하고 협력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그는 잠시 감정이 복받치는지 울컥하기도 했다. 생소한 문화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의지와 신념 뒤에는 오롯이 『문화와 예술』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과 연민이 있구나 하고 직감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 : 그의 버킷리스트는 현재 진행형

어느덧 박 회장과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어 골프에 대한 질문을 던졌더니 그의 목소리가 활기를 띄었다. “구력은 30년 정도 됐는데 태국에 있을 때 처음 골프클럽을 잡았어요. 하루에 54홀을 돌 정도로 마니아였어요. 숏게임은 잘하나 드라이버가 약점입니다. 20년 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한 후 무리하게 7번 아이언으로 연습을 하다가 갈비뼈를 다쳤는데 숏게임만 3개월을 연습하니까 자신감이 붙더군요. 그렇지만 인사아트프라자를 인수하면서 정리가 끝나고 정상궤도에 진입할 때까지는 골프를 멀리하려고 다짐했어요. 지금은 건강관리 차원에서 지인들과 틈틈이 라운딩도 하면서 사업구상에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웃음). 박 회장은 인사아트프라자를 말끔하게 인수한 뒤에는 지역사회에서의 봉사활동도 활발하게 추진한다.

독거노인들을 위해 ‘스타 작가전’을 개최하고 그 수익금의 일부를 사용한다. 가수 추가열, 전영록, 남궁옥분 등이 그와 함께하고 있다. 실명의 위기에 처한 노인들에게는 수술을 해주기도 했고,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종로구청에 2만5천 장의 마스크를 기증하기도 했다. 다채로운 문화예술 활동으로 인해 박 회장은 ‘제15회 2020 대한민국 나눔 대상’ 보건복지부 장관상, 글로벌 평화공헌 대상을 받았다.   

“제 아들은 현재 국내에 있고 딸은 성악을 공부해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예술을 하다 보니 예술인들이 상당히 힘들다고 딸이 ‘아빠 저는 아빠 재산을 물려받지 않아도 되니 아빠가 저에게 줄 재산이 있으면 우리 예술인들을 위해 사용하세요...’ 이렇게 저한테 당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 제가 큰 힘이 되어서 지금 문화예술인들을 조금이라도 돕고자 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박 회장이 꿈꾸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일까. “저는 일체 다른 사업은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 문화예술인들이 우리 미술계에서 꾸준히 노력해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빛날 수 있도록 우리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우리 미술인들에게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 항시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작가들이 널리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적덕지가 필유여경(積德之家 必有餘慶), 덕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는 말이다. 한편, 돈을 『버는 것이 기술』이라면 『잘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2023년 12월이다. 이는 바로 인사동 문화예술 지킴이 『박복신 인사아트프라자 회장』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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