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 작가 “마지막 날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바람이 속삭이는 문학의 산실, 반야산 끝자락 김홍신 문학관을 가다
반야산 끝자락에 자리한 김홍신 문학관은 침묵 속에서도 늘 이야기를 건네는 공간이다. 나무들이 속삭이고 바람이 노래하는 그곳에서, 만년필로 종이 위에 혼을 불어넣는 작가 김홍신을 만났다. 그의 문학적 발자취가 고스란히 새겨진 김홍신 문학관은 단순한 기념관이 아닌, 작가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문학의 현장이자 지역 문화예술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간시장에서 대발해까지, 우리 시대의 증언자 김홍신은 1947년 공주에서 태어났으나, 갓난아기 때 논산 반월동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 호적상 공주에 등록되었지만, 실질적인 고향은 마땅히 논산이라 할 수 있다. 건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학훈단 장교로 철책선 소대장으로 근무했으며, 제대 후에는 한센병 치료기관의 홍보잡지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첫 장편소설 『해방영장』의 밑거름을 마련했다.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단편소설 『본전댁』으로 등단한 그는 1981년 발표한 『인간시장』으로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인구 4천만 명 시대에 560만 부라는 경이적인 판매량은 그시대 억압된 자유에 대한 갈망을 대변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훈민정음 창제 이래 최고의 판매 부수라는 당시 광고 문구는 과장이 아니었다”고 소개한다. 군사정권 시기 사회의 부조리와 권력의 횡포에 맞서는 그의 작품은 당대 독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얻었다. 『인간시장』은 부도덕한 사회지도층의 행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인간 야욕의 내면을 파헤치며 시대의 아픔을 담아냈다. 이 작품은 영화 4편, TV 드라마, 연극, 만화로도 제작되었다. 『난장판』, 『대곡』 등 논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는 소시민의 애환을 그렸다. 2007년 출간된 『김홍신의 대발해』는 발해 역사 258년을 그린 10권 분량의 대하역사소설로, 작가는 3년간 두문불출하여 철저한 고증을 거쳐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인, 시민운동가, 교육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제15대와 16대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며 8년 연속 의정 활동 1위로 평가받았으며,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실천문학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 변화에 기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13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바람으로 지은 집, 김홍신 문학관 2011년 여름, “훗날 육신의 땅이자 영혼을 물려받은 논산에 얽힌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서 시작된 김홍신 문학관은 고향 후배 남상원 회장의 후의와 우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처음에는 논산시의 지원도 모색했으나, 추진위원회는 순수 기부금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2016년 남상원 회장이 소요 비용 전액을 후원하게 되면서, 집필관과 문학관 건립이 본격화되었다. 건양대학교 김희수 총장을 비롯한 동향 출신 인사들이 힘을 모으고, (재)홍상문화재단이 설립되어 본격적인 건립 사업을 추진했다. 김홍신문학관은 이처럼 고향 선후배 간의 넉넉한 우정과 사랑, 후원에 힘입어 2018년 여름 착공하여 2019년 6월 8일 개관했다.
김홍신 문학관은 394㎡(120평) 규모의 집필관과 887㎡(268평)의 문학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관의 건축 이념은 ‘바람으로 지은 집’이다. 건물은 자연의 빛과 바람이 수평·수직으로 통하여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연결되도록 지어졌다. 전통적인 한옥의 ‘통풍’과 ‘채광’ 원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자연과 인간, 문학과 독자 사이의 소통을 건축적으로 구현했다.
숨은그림찾기, 문학관 속 의미와 상징들 김홍신 문학관 곳곳에는 작가의 문학세계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숨어있어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문학관의 로고는 작가 김홍신의 언어 속에 새겨진 창작혼으로서의 ‘피 한 방울’과 그 결실의 문학 작품을 의미하는 ‘잉크 한 방울’을 상징한다. “소설가는 남의 잉크병의 잉크를 찍어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 몸속의 피를 찍어내 목소리를 낭자하게 남겨두려는 몸부림으로 나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왔습니다”라는 김홍신의 말처럼, 그는 평생 만년필로 육필 원고를 써왔다.
문학관 한복판에 자리한 모루는 김홍신의 호다. 모루는 대장간에서 달궈진 쇠를 두드릴 때 쓰는 받침쇠로, 작가의 국회의원 시절 홍문택 신부가 “김홍신은 세상을 떠받치는 버팀목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호 ‘모루’를 지어 주었다. 논산지역에서는 모루를 ‘머리독’이라 고도 부르는데, ‘독’이 ‘돌’의 논산 방언이므로 모루는 ‘머릿돌’로도 해석할 수 있다. 명재고택 측에서 기증받은 차돌바위와 검은대나무 (오죽)가 문학관 뒤란을 지키고 있다. 유태평양이 부른 ‘대바람소리’의 작시자(作詩者)이기도 한 작가의 대나무 사랑은 문학관 창문 타이포에도 새겨져 있다.
층별 전시공간, 작품 세계로의 여행 김홍신 문학관은 다양한 전시공간을 통해 작가의 삶과 문학세계를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1층에서는 작가의 삶과 대표작 만나기다. 작가의 일대기 전시와 ‘작가의 방’이 재현되어 있다. 원형극장에서는 『인간시장』과 『난장판』을 11개의 예술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북카페 ‘모루’에서는 작가의 모든 저서를 열람할 수 있다. 2층에는 바람의 이야기와 발해의 역사가 담겨 있다. 바람으로 그린 그림, ‘바람이 부른 노래’ 영상 설치작품과 『대발해』 관련 전시가 있다. 아카이브 공간에서는 작가의 삶과 관련된 5,000여 점의 자료를 만날 수 있다. 문학전망대 3층에서는 작품 속 주요 장소와 소리를 감상할 수 있으며, 지하에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위한 극장과 세미나실이 있다.
반야산과 문학관, 자연과 예술의 공존 김홍신 문학관은 캠퍼스와 반야산 사이에 위치해 학문과 자연, 문학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을 창출한다. 건양대 운동장과 반야산 등산로를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문학관을 경유하게 되면서, 일상에서 문학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방문하는 초중생들로 문학관 앞이 북적이곤 한다. 건양대학교 캠퍼스로 연결되는 출입구를 지나 문학관에 들어서면, 바람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문학관 뒤편의 산책로를 따라 파라솔 쉼터에 다다르면 건양대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산 아래 신작로를 걷다가 반야산 골 논으로 이어지는 농로에서 자연의 고요를 만날 수 있다. 다락논 양쪽의 개울에는 송사리와 우렁이가 살고, 때로는 고라니가 물을 마시러 내려오기도 한다.
김홍신 문학관은 2022년부터 시민강좌, 팟캐스트 교육, 사진전, 한국무용발표, 영화감독 토크쇼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며 지역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학관 사랑방 상시 개방, 김홍신 독서클럽, 시민아카데미, 문학교육, 지역 문화예술 콜라보, 웹·앱 아카이브 구축, ‘문학의 향기 벨트’ 조성 등 일곱 가지 계획을 통해 시민들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논산의 작은 산자락에 자리한 이 문학관은 한 작가의 삶을 넘어, 우리 시대의 역사와 아픔, 그리고 희망을 담아내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어가고 있다. 바람이 머무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학의 영원한 생명력에 벅찬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탑골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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